기독교 환타지 소설《영광에 이르기까지》제1권 ―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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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에 이르기까지》
제1권 ― 부르심
장르:언약 서사(Covenantal Epic), 구속 판타지(Redemptive Fantasy)
글: 곽영민
제1장
두 번째 목소리
엘리안은 그날 밤 잠들지 못했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을 때마다 낮에 보았던 것이 떠올랐다.
문서.
빛.
그리고 목소리.
나를 따라오라.
그는 이불을 끌어올렸다.
"꿈이었어."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냥 피곤해서 본 꿈이야."
그러나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꿈이라면 왜 아직도 심장이 이렇게 뛰는가.
꿈이라면 왜 그 목소리가 이렇게 선명한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목소리가 자신에게 했던 마지막 말이 잊히지 않았다.
내가 너를 선택하였다.
엘리안은 몸을 일으켰다.
방 안은 어두웠다.
창문 사이로 달빛이 희미하게 들어왔다.
그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책상 앞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낮에 보았던 문서가 놓여 있었다.
엘리안은 한동안 그것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왕실 기록관에서 사용하는 평범한 문서였다.
그는 손가락으로 종이를 천천히 만졌다.
"너를 부른다."
낮에 나타났던 글자.
정말 그것이 있었던 것일까?
엘리안은 문서를 뒤집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앞면을 보았다.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헛웃음을 지었다.
"미쳤군."
그때였다.
책상 아래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툭.
엘리안은 고개를 숙였다.
낡은 책 한 권이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조금 전까지 책상 위에 없었다.
책은 오래되어 표지가 닳아 있었다.
표지에는 제목이 없었다.
그는 책을 집어 들었다.
먼지가 손끝에 묻었다.
첫 장을 펼쳤다.
아무것도 없었다.
두 번째 장.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세 번째 장.
빈 페이지였다.
엘리안은 책을 덮으려 했다.
그 순간,
페이지에 글자가 나타났다.
그는 숨을 멈췄다.
한 글자.
그리고 또 한 글자.
잉크가 종이 속에서 천천히 올라오는 것처럼 문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엘리안은 움직이지 못했다.
문장은 아주 짧았다.
"두려워하지 말라."
그의 손에서 책이 떨어졌다.
쿵.
엘리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야?"
대답이 없었다.
"누구냐고!"
침묵.
그는 문 쪽으로 달려갔다.
문을 열었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복도 끝에서 작은 빛이 흔들렸다.
엘리안은 움직이지 않았다.
빛은 촛불처럼 흔들렸다.
그러다가 천천히 사라졌다.
그는 문을 닫았다.
등을 문에 기대었다.
숨이 거칠어졌다.
"하나님..."
그 이름이 입 밖으로 나왔다.
자신도 놀랐다.
엘리안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에 대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야기였다.
사람들이 교회에서 하는 이야기.
늙은 사람들이 믿는 이야기.
죽음이 두려운 사람들이 붙드는 이야기.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그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하나님이라면..."
그는 말끝을 흐렸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몰랐다.
잠시 후 그는 책상으로 돌아갔다.
바닥에 떨어진 책을 다시 집었다.
이번에는 책장을 넘기지 않았다.
그저 표지를 바라보았다.
그때 표지 중앙에 아주 희미한 문양이 나타났다.
십자가였다.
엘리안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손가락으로 문양을 만졌다.
따뜻했다.
그리고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낮보다 훨씬 가까웠다.
"엘리안."
그는 눈을 감았다.
"네."
대답하고 나서 스스로 놀랐다.
누구인지 묻지도 않았다.
왜인지도 묻지 않았다.
그저 대답했다.
"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음성이 말했다.
"내일, 북쪽 문으로 가라."
엘리안의 눈이 커졌다.
"왜요?"
대답이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합니까?"
침묵.
그는 다시 물었다.
"누구를 만나야 합니까?"
이번에도 대답이 없었다.
엘리안은 답답한 마음에 소리쳤다.
"적어도 이유는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음성이 들렸다.
이번에는 아주 조용했다.
"믿음은 모든 것을 아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엘리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를 아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목소리는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엘리안은 북쪽 문 앞에 서 있었다.
밤새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몇 번이나 돌아갈까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여기까지 왔다.
문을 나서자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도시는 평소와 같았다.
사람들이 오갔다.
수레가 지나갔다.
상인들이 물건을 팔았다.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엘리안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삶은 이미 변해 있었다.
그는 북쪽 길을 따라 걸었다.
한참을 걷자 도시가 보이지 않았다.
길은 점점 좁아졌다.
그리고 숲이 나타났다.
엘리안은 걸음을 멈췄다.
"여기서 뭘 하라는 거지?"
그때 숲 안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말발굽이었다.
한 마리.
그리고 또 한 마리.
엘리안은 뒤로 물러섰다.
나무 사이로 마차가 나타났다.
마차에는 한 노인이 타고 있었다.
노인은 엘리안을 보자마자 마차를 세웠다.
그리고 말했다.
"드디어 왔군."
엘리안의 얼굴이 굳었다.
"저를 아십니까?"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엘리안의 손에 들린 낡은 책을 바라보았다.
노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 책을 어디서 얻었나?"
"모릅니다."
"누가 주었나?"
"아무도요."
노인은 한동안 엘리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노인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분께서 시작하셨군."
엘리안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노인은 대답 대신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엘리안 앞으로 걸어왔다.
"네가 어젯밤 들은 음성을 믿느냐?"
엘리안은 얼어붙었다.
"어떻게..."
노인이 말했다.
"나도 들었으니까."
순간,
숲 전체가 조용해졌다.